잔치

어릴 적 앨범 사진을 꺼내 보다가 눈에 띄는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의 나는 3살 정도였는데,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많이 울어 눈이 부은 모습으로 엄마와 이모들의 한복 치마에 둘러 쌓여 진 채로 카메라를 보며 서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날 결혼식의 주인공이셨던 부부와 가족 분 들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리고 동시에 그 사진으로 인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를 얻었다. 사진 속의 나의 모습과 치마들의 구도가 독특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한복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사진을 좀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이 사진에서 보여지는 구도와 한복 치마 때문에, 조선시대에 누군가의 혼인식에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보라색에 금박 장식을 한 치마는 왕실의 중전마마 치마를 나타낸다. 치마의 금박 장식은 조선시대의 왕실 사람들의 한복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치마위의 꽃은 오얏꽃인데, 조선시대 말기인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다.


분홍색 치마는 기생의 한복이다. (기생 설명 – 영문 from 두번째 작품) 기생은 천민에 속하는 계층이지만, 직업상 예술 공연을 하고 주된 관람객이 양반계층 이기 때문에 화려하거나 예쁜 옷을 입으며 복식에 크게 얽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복식이 천민이라는 계급에서 완전히 자유로 울 수는 없기에 평민이나 양반, 왕실 계층과는 다른 점이 있었고, 이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다.
치마를 여미는 방향 : 왼쪽 -> 오른쪽, 17세기 까지는 치마를 오른 꼬리로 여며 입었으나,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당 색을 달리 했을 때 노론 여성들이 치마를 왼 꼬리로 여미면서 양반 계층 여성들에게 왼 꼬리 치마가 유행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엄격하게 지켜진 복식은 아니었지만, 조선시대에 한복을 입는 방식이 계급이나 생활 방식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개화기에 양반은 왼쪽으로, 특수층은 오른 꼬리로 치마를 여며 입는다는 인식이 굳어지게 되었다. (참조- 흑요석 이 그리는 한복 이야기)
사진의 앞쪽 줄의 오른쪽에 있는 한복은 양반 계층에 속하는 여자아이의 옷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에 주로 어린아이들이 입던 한복에는 색동이 자주 쓰이곤 했다. 이것을 조금 다르게 변형시켜서 깃 부분을 색동으로 만들어 보았다.


초록색 치마는 노비를 나타내는 천민계급의 치마이다. 그들은 집안일과 궂은일을 해야 했기에 줄 등으로 치마를 가로질러 묶어 폭이 좁게 입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속바지가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발목이 드러나게 되었다. 기생의 치마와 마찬가지로, 치마의 방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여밈으로 만들었다.
주황빛의 치마는 평민 계급인 한 농부 집안의 딸로 표현하고 싶었다.
